운명의 판타스틱 2008년 12월호에는 "대체 왜 내 원고는 거절당하는가"와 "대선배들의 충고"와 "이 잡지의 망할 편집자는 뭘 원하는 거야!"라는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이 기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어떤 원고를 보내야 좀더 유리한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월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설은 장편연재 소설과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장편연재는 말 그대로 장편을 연재하는 것이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몇 달 동안은 (아니면 몇 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바뀌지 않겠죠. 대신에 단편소설들은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소설을 게재하려고 하니 호마다 작가가 바뀌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잡지에 게재되길 바라며 투고하시는 분들께선 단편소설을 보내시는 게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물론 장편소설 대환영입니다. 다만은 장편소설은 게재여부보다는 출간여부를 먼저 판단하기 때문에 훨씬 불리하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단편소설의 분량이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요? 그 대중은 없습니다만, 만약에 소설가 지망생이시라면 60매에서 80매 사이로 쓰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만약에 한 번도 소설을 지면에 발표해본 경험이 없으신 분이 300매짜리 소설을 보내신다면 편집부에선 당연히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계간지를 제외한 보통 잡지에서 300매 원고를 한 번에 싣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통 두 번이나 세 번에 걸쳐 분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아주 보수적으로 생각합니다. 두 번이나 세 번에 걸쳐 모험을 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을 갖췄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고개를 젓고 말죠. 월간지의 경우 두 달에서 세 달씩이나 지면을 쉽게 내줄 편집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내용에 상관 없이 일단 분량이 많으면 편집자들은 부담부터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소설에 잘 몰입할 수 없게 됩니다.
더 보시겠어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실 때엔 세계관과 철학이 깊고 확고해야 합니다. 한 예를 들어볼게요.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모두들 민감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중에 이런 원고가 들어왔다고 상상해봅시다. 편집자라면 가장 먼저 소설을 쓴 사람이 얼마나 이런 소재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아주 정말 유심히 뜯어봅니다. 흥미 위주일 뿐이거나 사건의 나열만 있거나 재미삼아 쓴다고 느끼는 경우엔 아마도 많은 편집자들이 읽기를 그만둘 것 같습니다.
투고하시려는 잡지를 꾸준히 구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판타스틱에 투고하고 싶으신 분은 판타스틱을 꾸준히 구독하시는 게 좋습니다. 편집자들이 어떤 글을 원하는지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재가 겹쳐지는 걸 피할 수도 있습니다. 판타스틱의 경우에, 어느 달에 신인 단편소설이 sf였다면 그 다음 달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sf 소설을 선택할 가능성이 많이 줄어듭니다. 차라리 몇 달 묵혀두셨다가 투고하시는 게 훨씬 유리할지도 모릅니다.
묵혀두시는 동안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주위에 널리 읽혀보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투고원고를 읽다보면 아이디어와 소재는 참신한데 문장력과 구성이 딸리는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이럴 때에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고, 그리고 실제로 일이 많아 (점심도 못 먹을 정도로 일이 있는 날도 있고, 옆자리 편집부 식구와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날도 있습니다.) 투고자에게 적절한 조언과 교정을 해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좀 불친절해서 가부만을 말하려 할 뿐이지, 이 문장은 이 문장으로 바꾸면 좋겠고, 구성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을 것 같고, 이 부분은 불필요하니 뺐으면 좋겠고, 여기에서 무언가를 더 넣었으면 좋겠다 같은 말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개가 게재 여부가 결정된 후에라야 그런 코멘트를 하려 합니다. 편집자들은 대부분의 소설가와 소설가 지망생은 남에게 원고를 쉽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투고하실 때에도 엄청난 용기를 내어 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편집자들은 그러한 용기를 잘 이해하고 있고 언제나 존중하려 합니다. 다만 하는 일과 사고구조 자체가 불친절할 따름입니다. 작품으로서의 게재여부를 판단하는 게 가장 먼저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편집자들에게 코멘트를 기대하기보다는 주위의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언과 교정을 얻는 게 더 빠르고 좋을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물론 작법 교실을 열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만...)
그리고, 묵혀두시는 동안에 하실 일을 추천해드리자면 좋은 작품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철학자 강유원 선생은 무조건 많이 쓰기보단 정독하기를 여러 번 해야 하며, 그 읽는 방법으로 작품 전체를 펜으로 필사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죠. 사람마다 글쓰기 훈련하는 방법은 다 다르겠지만 많이 읽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장르소설을 쓰시고자 한다면 더더욱 많이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은 반은 농담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투고작은 편집자의 기분과 건강에 따라 결정되기도 합니다-_-;;;;;;;; 그리고 지금 드리는 말씀은 백 퍼센트 진담입니다. 그래서 읽자마자 결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제가 감기도 걸리고 야근도 많아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일 년 가야 한 번 체하면 많이 체하는 위를 가졌는데도 요샌 자주 체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고름" 얘기 나오면 잘 읽다가도 바로 덮어버립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는 영화가 있었죠. 전 그 영화를 90년대 초에 봤는데 그때만 해도 그 영화가 수입금지되던 시대였습니다. 이유인즉,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포르노라는 이유에서였는데 막상 보니 별로 안 야하더군요. 근데 그 영화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주는 자주 발가벗고 나오는데 남주는 옷을 두껍게 입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사람들 눈에는, 특히 비평가 눈에는 마초-파시스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나봅니다. 나중에 감독 인터뷰를 보니 당시에 말론 브란도가 살이 마구마구 쪄서 그걸 감추느라 벗으라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나 뭐라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신체적인 조건이 어떤 의사결정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써놓고 보니 맞는 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게재여부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습니다. 게재여부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답변을 안 드리는 데에는 이런 저런 상황에 밀리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2월호 작품 투고 안내에도 "게재 예정작에 한해 별도로 연락을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남겨두었습니다. "언젠가는 연락이 갈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라고 쓰는 것보다 더 낫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투고는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의 모든 편집자와 투고자는 서로 상대방을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처음 만날 때에 자기를 알리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투고자가 이메일로 작품을 투고하는데 이메일에 딱 한 줄 "수고하세여~~"만 써놓으면 촘 많이 곤란합니다. 또는 전화번호만 적어놓으셔도 역시 곤란합니다. 이메일에 적어도 성함, 연락처, 투고작 제목 정도는 적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투고 원고에는 성함, 연락처, 이메일 주소, 개요 정도는 적어주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투고 이메일을 받으면 투고작은 컴퓨터 투고함 폴더에 따로 보관하기 때문입니다. 투고작이 좋아 연락드리려 하는데 원고에 연락처가 없으면 이메일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 이메일에 성함이나 원고 제목이 있어야 쉽게 검색됩니다. 그리고 이메일을 살펴보면서 빠뜨린 투고작이 있나 살펴보기 위해 이메일함과 투고함을 동시에 조회하는 경우에도 이메일에 성함과 주소가 있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리고 원고 파일에 성함이나 필명을 같이 써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시놉시스를 적는 게 좋겠냐는 질문을 간혹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시놉시스를 꼭 적는 것이 좋습니다. 시놉시스를 작성하시는 건 적어도 자신이 어떤 큰 틀을 세워 놓고 그것에 따라 썼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또는 자신이 무엇을 썼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시놉시스를 쓰시는 건 편집자에게도 좋지만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ps. 간혹 그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편집자가 긍정적인 판단을 하는 글을 쓸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인기를 끌 글을 쓸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걸 알면 제가 작가를 하지 왜 편집자를 하겠습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공유해요~~